전기차 수요가 급증하면서 배터리 소재인 니켈, 코발트, 리튬의 중요성도 함께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지상의 자원 공급망은 지역 편중, 공급 불안정, 환경 파괴 등의 문제로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국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일부 핵심 광물은 소수 국가에 집중되어 있어 정치적 리스크와 공급망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심해저 자원이다. 바다 밑에 매장된 광물은 지상보다 품위가 높고, 아직 미개발 상태인 만큼 미래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글에서는 심해 자원이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에 어떤 구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그리고 이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술적 도전과 환경적 부담, 지정학적 재편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알아보자.
배터리 시장의 급팽창, 자원 확보가 가장 큰 숙제
지금 전 세계는 전기차(EV) 시대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과 함께 자동차 산업의 중심이 내연기관에서 배터리 기반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배터리 수요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은 물론 신생 EV 스타트업들까지 시장에 뛰어들면서 배터리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문제는 배터리를 구성하는 핵심 소재인 니켈, 코발트, 리튬 등이 특정 국가에 편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코발트의 경우 전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이 콩고민주공화국에 집중되어 있어 정치적 리스크가 크며, 아동 노동 및 무분별한 광산 개발로 인한 환경과 인권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단순한 수급 불안을 넘어, 윤리적 공급망 구축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같은 배경 속에서 비교적 미개척 상태인 심해저 자원이, 향후 배터리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뒷받침할 새로운 해답으로 주목받고 있다.
심해저, 차세대 배터리 금속의 보고
심해에는 망간단괴, 해저열수광상, 코발트각력암 등 다양한 형태의 금속 자원이 분포되어 있다. 망간단괴는 태평양 해역 바닥에 널려 있는 검은색 구형 광물로, 망간을 주성분으로 하면서 니켈, 코발트, 구리 등이 함께 함유되어 있어 전기차 배터리 생산에 매우 적합하다. 이들 자원은 지상 매장지보다 불순물이 적고, 광물 품위가 높아 정제 효율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해저는 산화 환경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어서 금속의 자연 정련 상태가 양호하다는 점도 강점으로 평가된다. 클라리온-클리퍼튼 존(CCZ)과 같은 특정 해역에는 수십억 톤 규모의 금속 자원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수십 년간의 전기차 배터리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다. 이 지역은 해저 자원 탐사에 있어 가장 주목받는 국제적 거점 중 하나로, 일본, 중국,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가 국제해저기구(ISA)의 승인을 받고 탐사 권한을 확보했으며, 일부는 시범 채굴 단계까지 진입하고 있다.
공급망 다변화 전략의 핵심 자원으로
전기차 배터리 산업은 자원 확보에서부터 완성차 생산까지 긴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핵심 광물의 채굴, 정제, 수송, 배터리 셀 제조, 차량 조립에 이르는 복잡한 밸류체인은 국가 간 정치적, 경제적 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현재의 공급망은 아프리카, 남미, 동남아 등 자원 부국 소수 국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어, 지정학적 불안정성과 물류 지연, 자원 민족주의, 무역 규제 등의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에 따라 공급망 리스크를 분산하고, 외교적 유연성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반면 심해저 자원은 특정 국가가 독점하기 어렵고, 국제해저기구(ISA)의 관리 아래 공정한 탐사권 분배가 이뤄진다. 이러한 구조는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전략적 기반이 될 수 있으며, 자원 외교 측면에서도 국가 간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도 심해 자원 확보는 중장기적으로 자원 가격 변동성에 대한 완충 장치가 될 수 있으며, ESG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한 새로운 접근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기술적 장벽과 경제성 문제
심해저 자원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현실적인 진입 장벽도 존재한다. 먼저 기술적으로는 수천 미터 깊이에서 작동할 수 있는 채굴 장비, 슬러리 회수 시스템, 실시간 원격 제어 기술 등이 아직 상용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또한 이들 장비는 개발과 운용에 막대한 비용이 들며, 회수된 자원의 정제와 육상 이송까지 포함하면 경제성이 불확실한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환경 문제는 기술과 비용을 넘어서는 또 다른 과제다. 심해 생태계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고, 채굴로 인한 교란이 생물 다양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이 어렵다. 따라서 현재는 ‘가능성’과 ‘위험’이 공존하는 불확실성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자원 확보와 지속 가능성, 양립 가능한가
궁극적으로 심해 자원이 전기차 배터리 산업에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으려면, 자원 확보와 환경 보존이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심해 채굴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사전 환경영향평가, 생태계 복원 방안 마련, 채굴 방식의 표준화 등 다양한 정책을 논의 중이다. 또한 일부 기업은 '환경 최소 피해형 채굴 기술'을 개발해 시험 단계에 돌입하고 있고, 일부 국가는 심해 채굴을 일정 기간 유예하자는 모라토리엄 주장도 펼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보다 철학이다. 눈앞의 자원보다 바다의 미래를 함께 보는 관점이, 진정한 지속 가능성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