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자원은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기술은 더 많은 금속을 요구하고 있다. 이 모순 속에서 국가들은 이제 바다 밑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 심해저에는 아직 손대지 않은 금속 자원이 풍부하게 존재하며, 이들을 차지하기 위한 탐사 경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특히 전기차, 반도체, 재생에너지 산업의 급성장은 이 자원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해저 광구 확보를 위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과 그 이면에 숨겨진 기술, 외교, 생태적 갈등을 함께 알아보도록 한다.
해저, 자원 전쟁의 최전선
20세기까지 인류는 대부분의 자원을 지표면이나 지하에서 채굴했다. 하지만 이제는 얘기가 달라졌다. 전기차, 풍력터빈, 반도체, 스마트폰 같은 첨단 산업이 특정 희귀금속에 의존하면서, 그 수요는 기존 매장지로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코발트, 니켈, 희토류 등은 한정된 국가에만 편중되어 있어, 공급망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다. 그러자 국가들은 눈을 돌려 바다 아래로 향하게 된다. 해저에는 '망간단괴', '코발트각력암', '해저열수광상'과 같은 자원 덩어리가 광범위하게 매장돼 있고, 특히 태평양, 인도양 일부 지역은 희귀 금속이 고농도로 집중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자원은 지표면보다 불순물이 적고 정제 효율도 높아 상업적 가치가 크다. 현재 이들 해저 자원의 총 가치는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며, 관련 기술의 진전 속도에 따라 실제 채굴 시점도 점차 앞당겨지고 있다.
바다를 둘러싼 국제 협약과 제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심해저는 공해로 분류되며, 한 국가가 소유할 수 없다. 대신 국제해저기구(ISA, International Seabed Authority)가 전 세계를 대신해 관리한다. 각국은 ISA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기술 능력과 환경 보호 계획 등을 검토받은 뒤에야 ‘탐사 계약’을 맺을 수 있다. 현재까지 승인된 탐사 계약은 30건 이상이며, 이 중 일부는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 프랑스 등이 보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3개의 해저 광구를 보유 중인데, 이 중 하나는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튼 존(CCZ)에 위치한 전략적 구역이다. 각국은 이러한 탐사 권한을 바탕으로 자국 기업과 협력하며 실질적인 채굴 준비에 나서고 있다.
심해 채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심해는 인류가 접근하기 가장 어려운 환경 중 하나다. 평균 수심 4000미터의 어둡고 차가운 공간, 기압은 지상의 수백 배에 달한다. 여기에선 일반적인 기계나 인간 작업자가 활동할 수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고정밀 원격 탐사로봇, 자율운항 채굴 시스템, 실시간 데이터 전송 기술 등 고난도 기술의 총합이다. 이런 장비들은 극저온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해야 하며, 해저 지형을 정밀하게 스캔하고 목표 광물을 정확히 추출하는 기능까지 갖춰야 한다. 현재 일본은 해저열수광상 채굴 테스트에 성공했고, 중국은 해저 채굴 드론의 시범 운용을 시작했다. 한국도 KIOST를 중심으로 시험 장비를 개발하고 있으며, 현대건설과 포스코 등 민간 기업도 파일럿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기술력은 결국 해저 자원의 실질적 점유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며, 이는 곧 국가의 자원 주권과도 연결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바다 생태계
수많은 미생물, 심해 생물, 해저 열수 생태계가 존재하는 미지의 공간인 해저는 단순히 자원이 매장된 곳이 아니다 . 이들은 지구의 초기 생명 형태와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생명 시스템의 단서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채굴이 이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완전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슬러리(혼탁물질)는 수 킬로미터에 걸쳐 퍼질 수 있고, 부유물은 필터 피딩을 하는 생물군에 치명적일 수 있다. 또한 채굴 장비의 소음과 진동, 물리적 교란은 서식지를 파괴하고 종 다양성을 위협할 수 있다. 게다가 해저는 한번 손상되면 복원되기까지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때문에 일부 과학계에서는 "심해 채굴은 우주 채굴보다 먼저 시작되면 안 된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으며, 보다 엄격한 국제 기준과 사전 검증 체계가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광물 경쟁을 넘어, 해양 지정학 전쟁으로
현재 해저 자원을 둘러싼 움직임은 경제적 이슈를 넘어서고 있다. 희소금속을 확보한 국가는 기술 주도권을 갖게 되고, 이는 외교적 발언권, 경제적 우위, 심지어 군사적 전략성까지 확장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은 희토류 공급 제한으로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친 전례가 있으며, 해저 자원도 같은 전략 자산으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각국은 탐사 기술뿐 아니라, 광구 확보를 위한 외교·정보전을 강화하고 있고, 특히 미국과 중국은 관련 전략 보고서를 별도로 발간하며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심지어 해양안보와 해저케이블 보호 문제와도 얽히며, ‘조용한 해저 전쟁’이라는 표현도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