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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바다인가? 국제 해역에서 벌어지는 라이선스 쟁탈전

by 샤빠 2025. 6. 14.

지구 표면의 자원이 점점 고갈되면서, 자원 경쟁의 무대는 ‘육지’에서 ‘바다’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 특히 어느 한 국가의 영토로 간주되지 않는 공해(公海) 아래, 심해 광물 자원을 둘러싼 탐사권 쟁탈전은 새로운 자원 패권 전쟁의 서막이라 할 수 있다. 이곳에서는 단순한 채굴 경쟁을 넘어, 기술력, 외교 전략, 자금력, 그리고 국제 협약 준수 여부까지 총체적인 국가 역량이 시험대에 오른다. 바닷속 자원을 선점하려는 움직임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도와 규모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다. 국제해저기구(ISA)가 어떻게 공해의 해저 자원을 관리하고 있는지, 주요 국가들의 광구 확보 현황과 기술 진척 상황은 어떤지, 그리고 이로 인해 변화하는 국제 질서의 흐름까지 심도 있게 알아보도록 한다. 

국제 해역, 그냥 채굴하면 되는 게 아니다

바다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처럼 보이지만, 자원 개발은 결코 자유롭지 않다. 해양법에 따르면, 연안국은 자국에서 200해리 이내를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보유하지만, 그 바깥은 공해로 분류되어 국제해저기구(ISA)가 관리한다. ISA는 유엔 산하의 국제기구로, 공해 상의 자원 탐사와 개발을 공정하고 지속 가능하게 조율하는 역할을 맡는다.

광구를 배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신청만으로는 부족하다. 먼저 기술력과 재정 능력, 그리고 환경 영향에 대한 분석과 복원 계획까지 포함한 세부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ISA는 현재까지 전 세계 30개 이상의 심해 탐사 계약을 승인했으며, 이 중 상당수는 중국, 러시아, 프랑스, 한국, 일본 등이 차지하고 있다. 각국은 자국 연구소 또는 국책기관을 통해 탐사권을 확보한 상태다.


탐사권이 곧 자원 패권,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탐사권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미래 자원 수익의 씨앗이다. 한 번 확보한 해저 광구는 수십 년간 해당 구역에 대한 우선 탐사 및 개발 권리를 의미하며,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채굴권으로의 전환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는 단지 자원을 캐내는 행위를 넘어, 해당 국가가 장기적으로 자원 수급을 자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결국 누가 얼마나 많은 광구를 확보하고, 이를 언제 상용화 단계로 전환할 수 있느냐에 따라 산업 패권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태평양 클라리온-클리퍼튼 존(CCZ)이다. 이 지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망간단괴가 분포되어 있는 해역으로, 코발트, 니켈, 구리 등 전기차 배터리와 반도체 산업에 필수적인 금속이 고농도로 포함되어 있다. 이들 자원은 정제 효율이 높고 환경 오염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어, 상업적·환경적 측면 모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한국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을 통해 이 지역의 해저 광구 2곳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연간 수백만 톤에 달하는 자원의 우선 탐사권을 보유 중이다. 반면 중국은 총 5개의 탐사 구역을 확보하며 이 분야에서 가장 많은 권리를 가진 국가로, 기술 개발뿐 아니라 외교적 협상력까지 바탕으로 국제 영향력을 점점 넓혀가고 있다.


기술력만 있으면 될까? 외교와 정책의 그림자

심해 광구 경쟁에서 단순한 기술력은 절반의 조건일 뿐이다. ISA 내부에서의 영향력, 외교적 협상력, 다자간 협약 참여 여부 등도 광구 확보의 중요한 요인이다. 특히 자원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국가일수록 양자 계약을 선호하며, 이는 국제 규범과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일례로 중국은 아프리카 연안국과의 해양 협력을 강화하며 독자적인 해저 개발 라인을 구축 중이고, 프랑스는 해양법 체계를 지렛대 삼아 규범 중심의 전략을 펴고 있다. 한국은 기술 기반 국가라는 강점을 살려 '투명하고 안정적인 파트너' 이미지를 강조하며 국제사회 내 입지를 넓히는 중이다. 하지만 개발권이 향후 무력 충돌이나 외교 분쟁의 뇌관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정한 개발과 생태 보전, 양립 가능한가

가장 큰 난제는 ‘누가 얼마나 차지할 수 있느냐’보다,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있다. 심해 생태계는 아직 대부분이 미지의 영역이며, 그 복잡성과 상호작용은 지상 생태계보다 훨씬 덜 이해되고 있다. 이처럼 과학적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 무분별한 채굴이 이뤄질 경우, 복구 불가능한 생태적 손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채굴로 인한 혼탁수 확산, 미세 입자의 해류 이동, 저서 생물의 서식지 파괴는 생태계에 장기적이고 광범위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국제해저기구(ISA)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영향평가와 사후 복원 기준을 점차 강화하고 있지만, 탐사 단계에서 채굴 단계로 넘어가는 국가들의 실질적 행위를 통제하기에는 제도적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기술과 자본을 보유한 선진국 중심의 자원 확보 움직임은 개발도상국과 후발국에게 또 다른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들은 해양 채굴에 필요한 고도 기술이나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지 못해 탐사권 확보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심해 자원을 둘러싼 새로운 ‘자원 불평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심해 공동관리체제’나 ‘자원 수익 공유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경제 문제를 넘어, 자원 확보, 생태 보존, 그리고 글로벌 형평성이라는 세 가지 긴장 요소를 동시에 조율해야 하는 복합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바닷속 라이선스는 미래의 국경선이다

심해 광구 확보 경쟁은 단순한 경제적 이해를 넘어선다. 그것은 단기적인 채굴 수익을 넘어, 미래 산업의 구조와 방향, 국가 간 기술력 격차, 외교적 영향력의 분포까지 좌우하는 중대한 전략 게임이다. 다시 말해, 심해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안정적으로 점유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산업 패권이 결정될 수 있으며, 이는 곧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자원 자립도가 기술 주권과 연결되고, 기술 주권은 다시 외교력과 군사력에 영향을 미치는 오늘날의 세계 질서 속에서, 바다를 누가 통제하느냐는 단순한 해양 문제가 아닌 세계 질서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해저 광구를 둘러싼 외교 협상과 국제 규범 재편 움직임도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다자 협약이 아닌 양자 계약을 선호하는 일부 강대국의 전략은 기존 국제 해양법의 틀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조용한 충돌이 수면 아래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조용한 전쟁의 향방에 따라, 앞으로는 바다 위의 국경선은 물론 해저 지도의 판도 자체가 새롭게 그려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